'인간관계'라는 말처럼 여러 감정을 느끼게 해 주는 단어가 있을까? 좋은 관계는 커다란 기쁨이고, 안 좋은 관계는 삶을 지옥으로도 만드는 '관계'!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가지고 싶다면,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라는 말이 있다. 당연히 좋은 관계를 가지고 싶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지. 한 번에 완벽한 모습으로 변화할 수는 없겠지만, 하나하나씩 바꿔나가면서 변화해 나가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우선 마음을 좋게 먹기로 결심했다.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배려하고. 그런데 생각보다 효과가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내가 아무리 좋은 의도로 대해도, 상대방은 다르게 해석할 때가 많았다. 뭐가 문제인 거지?
그때 생각한 것이 혹시 내가 하는 '말'이 문제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내 말이 상대방에게 좋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혹시 나쁘게 해석된다면?
말하는 방법도 공부해야 하는 것인가? 옹알이 이후로 말은 자동적으로 배우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니 처음엔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딴 방법도 떠오르지 않고, 이것이 문제의 원인일 수도 있다는 매우 높은 의심이 들었기 때문에 말공부에 관한 책을 찾아 공부하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신세계였다.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너무나 많은 실수를 하고 있어서 얼굴이 화끈거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리고 내가 좋은 의도로 말한 것이 상대방에게 굉장히 싫은 말인 경우도 많았다. 말에 대해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왜 이걸 공부한다고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는지 이상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중요한 건데? 이렇게 영향력이 큰데, 왜 아무도 이걸 배워야 한다거나 혹은 가르쳐주지 않았던 거지? 학교에서는 왜 이것이 정규과목이 아닌 것인가?
여러 말공부 책 중에서 정말 큰 가르침을 준 책은 [엄마의 말공부](이임숙 저)이다.
(이 책은 나중에 2권도 나왔다)
이 책에서는 엄마가 배워야 할 말공부를 '엄마의 전문용어 5가지'로 나누어서 설명해주시고 있다. 엄마의 말공부라고 해서 그냥 육아책이거나 아이들에게나 맞는 것이라고 치부한다면 정말 아까운 기회를 날리는 것이다.
이것을 적용해본 결과, 남녀노소 모든 관계에 적용 가능하며 효과가 있었다. 돌아보면 이 5가지 말 습관을 체화하려고 노력하고 관계에 적용한 그때가 나의 관계의 전환점이었다. 아직 더 올라가야 할 단계가 많지만, 확실히 전과는 단계로 진입했다는 것은 확실하다.
엄마의 전문용어 5개를 짧게 요약해본다(좀 긴 것 같지만 원래는 훨씬 더 길었다).
엄마의 전문용어 1 : 힘들었겠다.
아이를 다그치고 혼내고 난 뒤, 혹은 속상한 일이 있거나 뭔가 마음대로 되지 않아 짜증을 낼 때 사용하는 전문용어는 "힘들었지"다. 친구와 다투었는데 우리 아이가 잘못했을 때조차도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말은 바로 이 말이다.
"그래, 힘들었지. 힘들었겠다. 많이 힘들었을 거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엄마가 자신이 힘들었음을 알아주기만 해도 아이의 고통은 사라진다. 고통이 있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면 아이는 그 상처를 고스란히 마음속 깊은 곳에 간직한다. 자기가 잘못했는데 무슨 상처가 남느냐고? 잘못했어도 왠지 원망스럽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마음을 몰라주니 답답하고 화가 난다. 제대로 말하면 되지 않느냐고? 자신의 마음을 조목조목 다 말할 수 있는 아이는 별로 없다. 그러기에 "엄마가 화내서 힘들었구나. 많이 슬펐지. 무서웠지. 미안해"라고 아이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 필요하다.
엄마의 전문용어 2: 이유가 있을 거야. 그래서 그랬구나
아이가 문제 행동을 하면 엄마는 혼을 낸다. 잘못했으니 혼나야 한다는 것은 아이들도 잘 안다. 하지만 자신이 잘못된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음을 누군가는 알아주기를 바란다. 당연히 그 누군가는 엄마다. 그래서 아잉에게 어떤 이유가 있음을 믿는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을 표현하는 엄마의 전문용어가 필요하다. 아이가 아무리 잘못했다 해도 이면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다. 잘못한 일을 혼내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아이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먼저 알아주고 충분히 들어주고 난 다음 충고하자. 이유를 듣고 나면 엄마도 심하게 흥분해서 아이를 혼내거나 아이 마음에 상처 주는 일은 하지 않게 된다. 이유를 듣고 난 다음에는 오히려 아이의 마음을 몰라준 엄마가 더 미안해할 때가 많다.
엄마의 전문용어 3: 좋은 뜻이 있었구나
아무리 아이가 문제 행동을 하더라도 그 속에는 또 다른 긍정적 의도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친구를 때리고, 거짓말을 하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 문제 행동의 이면에 긍정적 의도가 숨어 있다는 말이다. 동생을 때린 아이는 순간 때릴까 말까 고민하면서 한참 동안 망설였을 것이다. ... 그러다 정말 못 견디게 도리 때, 더는 참을 수 없을 때, 더 좋은 방법을 알지 못할 때 문제 행동을 선택한다. ... 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나쁜 방법을 사용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아이가 모를 뿐이다. 그러니 우선 아이의 긍정적 의도를 인정해주고 올바른 마음을 가졌음을 칭찬하자. 그런 다음 올바른 의도는 올바른 방법으로 실행할 때만 인정받을 수 있고 의미가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면 된다. 이런 과정 없이 때린 행동에만 초점을 맞추어 혼내고 충고한다면 아이는 별다른 변화의 계기를 얻지 못한다.
... 아이의 긍정적 의도가 무엇인지 한 번 더 생각하고 찾아 말해주어야 아이의 행동이 달라진다. 엄마가 찾아준 바로 긍정적 의도대로 성장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엄마의 전문용어 4: 훌륭하구나
아이의 성격을 부정적으로만 보는 엄마에게 연습하게 하는 것이 있다. 같은 행동에서 부정적으로 보았던 아이의 성격적 특징을 긍정적으로 바꾸어 보는 것이다. 소심한 사람은 뒤집어 보면 아주 세심하게 다른 사람이 놓치는 부분을 찾아내는 장점이 있다. ... 중요한 것은 성공한 이들에게는 보통 사람들은 모두 단점으로 보는 바로 그 행동을 장점으로 보고 지지하고 격려해준 누군가가 있었다는 점이다. 그 사람이 엄마이길 바란다. ...우리 아이의 단점으로 느꼈던 모습이 뒤집어 보면 아이가 앞으로 개발하고 발전시켜나갈 훌륭한 강점이 된다.
엄마의 전문용어 5: 어떻게 하면 좋을까?
아이들이 꼭 해야 하는 일을 싫어하게 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아이가 어떤 방법으로 하고 싶은지 엄마가 물어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누구나 공부도 잘하고 싶고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데도 정작 꼭 해야 하는 학습과 과제에는 진절머리를 친다. 이유는 단순하다. 엄마가 아이의 생각을 물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숫자 공부를 시키고 싶다면, 1부터 100까지 세기를 연습하기 바란다면 무엇으로 세기 놀이를 할지 질문하면 된다. ... 아이가 원하는 방법을 물어보기만 해도 기특하게도 힘든 과제를 거뜬히 해낸다. 아이도 생각할 줄 알고 그 생각이 무척 기발하고 기특하다는 걸 믿게 된 엄마는 이제 무얼 하든 아이에게 물어보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이 내용은 이 자체로 아이들에게 적용이 가능하다. 그리고 어른에게도 가능하다. 책을 읽고 그 효과를 보려면 '이 내용을 나에게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봐야 한다. 그리고 여러 방법으로 적용해 보고, 그 효과가 나기 시작하면 삶이 변하기 시작한다. 하루에 하나라도, 한 달에 하나라도 변하기 시작한다면 10년 뒤, 20년 뒤에는 크나큰 차이가 생길 것이다.
나는 엄마의 전문용어 5개 내용을 읽고 또 읽고, 줄 치며 읽고 다시 또 읽으면서 외우고 연습했다. 내 의도가 좋은 만큼 좋은 결과를 얻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말 효과가 생기기 시작했다.
어느 겨울 저녁, 밥을 먹은 후에 차를 한 잔 마시고 있는데 친구 A에게 전화가 왔다. 어찌 지내냐고 묻는 안부 전화였는데, 잘 지낸다고 하고 친구의 안부를 묻자. 힘든 기색을 보였다. 내가 무슨 일이냐고 묻자, 친구는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예전 같으면 충고, 조언, 해결책을 제시하려고 바빴을 텐데 그런 마음을 다 내려놓았다. 그리고 엄마의 전문용어 1이 생각났다. "힘들었겠다. 마음이 힘들었겠네. 고생 많이 했네." 이런 말만 했다. 이게 과연 친구에게 도움이 될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친구는 목소리가 달라졌다. 그리고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진짜 내면에 있는 생각과 이야기들까지.
그리고 이야기를 들으며 "네가 이유가 있으니 그랬겠지."라고 믿어주고 이유를 물어보자, 친구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말 속상한 이야기를 이제 자기 입장에서 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3자처럼 객관적으로 이야기를 설명했었는데, 정말 자신의 입장에서 솔직히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네가 그렇게 한 거는 좋은 뜻이 있었네." 하며 긍정적 의도를 이야기했다. 만들어서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이야기에 있는 친구의 좋은 의도를 찾아서 이야기해 준 것뿐이었다.
그리고 풀 죽은 친구가 안쓰러워서 내가 평소 알고 있던 친구의 장점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너는 잘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사실이니까. 지금까지 친구는 많은 일이 있었고, 잘 해결해왔다. 그렇게 이 일도 잘 해결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친구의 상황과 환경 요소는 본인이 제일 잘 알 것이었다. 내가 친구에 대해 친구보다 뭘 더 잘 안다고 그렇게 충고해왔던 것일까? 오히려 과거의 내 행동들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친구에게 "어떻게 하면 좋을까?"하고 물어봤다. 후련하게 이야기하고 나서인지 목소리가 밝아졌고, 조금 더 차분히 생각해봐야겠다고 대답했다. 나는 지금껏 친구와의 대화에서 이번에 가장 말을 적게 했다. 듣고, 엄마의 전문용어 5개를 말한 게 거의 다 였다. 그런데 친구는 정말 고맙고, 정말 많은 위로가 되었다고 했다. 나는 말한 것도 거의 없는데? (말은 친구가 다했다.)
그때 이 '엄마'의 전문용어가 어쩌면 엄마뿐 아니라 '사람'의 전문용어이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상대방의 대화에서 이 5가지 문장을 맥락에 맞춰서 쓴다. 그 후부터 친구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보통 나이가 들면 친구가 점점 더 적어진다고 하지 않나? 어쩌면 나이가 들수록 자기 생각이 강해지고, 그 생각을 바탕으로 상대방에게 충고, 조언, 평가, 비판을 많이 하기 때문에 주변에 사람이 적어지는 것일까?
항상 인간관계는 나에게 에너지를 뺏어가는 영역이었는데, [엄마의 말공부]가 내 인생을 바꾸어 주었다. 이제는 인간관계는 나에게 에너지를 생기게 해주는 영역이 되었다.